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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신라 浿江鎭典의 정비와 漢州 西北境의 郡縣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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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패강진전은 패강진을 관장하기 위한 관사이다. 최근에 필자는, 732년 발해의 등주 공격을 계기로 신라가 대동강 이남과 황해도 서해 연안지역에 수자리를 설치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본고에서는 그 때에 미처 다루지 못한 패강진의 위치와 관할구역, 그리고 예성강 하구와 황해도 내륙개발 과정 등을 검토하였다. 이에 고려 개국세력의 기반이 된 浿江道?浿西道는 신라의 그것을 승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곧 패강도는 고려성종 때의 서해도로서 황해도 패강 이남과 서해 연안에 걸친 지역을, 패서도는 서경(평양)이 관할하는 패강(대동강) 이서 지역을 지칭하고, 관내도는 신라의 漢州관내를 일컬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패강진은 처음에 ⌈신당서⌋에서 신라 서북단의 군진으로 서술된 長口鎭을 중심으로 한 14개의 진으로 구성되었으나, 헌덕왕대에 군현을 정비하면서 12개의 진으로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라 내륙 서북 국경 지역의 개발은 성덕왕 31년(732) 발해의 등주 공격을 계기로 패강 및 황해도 서해 연안에 長口鎭을 중심으로 수자리를 설치하여 국경을 획정(735~736)한 데서부터 비롯하였다. 이후로, ‘예성강?임진강 하구 개발(748, 14군현 설치) → 예성강 이북내륙 지역 개발(762, 6성 축조) → 패강 이남 지역 군현 정비(826, 패강장성축조)’의 과정을 거쳐 패강 지역에 대한 통치 체제를 정비해 나간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예성강 하구의 확보와 내륙 지역의 개발은 당나라와의 새로운 교역항의 개발뿐만 아니라 농상의 증대를 기하는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8세기 중반에 서북 국경의 새로운 위협으로 대두된 안사의 난과 해적들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

Ⅰ. 머리말 Ⅱ. 浿江道와 浿西道의 위치 비정 Ⅲ. 浿江鎭典의 정비와 浿江鎭의 관할 구역 Ⅳ. 예성강?임진강 하구 개발과 漢州 西北境의 郡縣 설치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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