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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쿠빌라이 집권 초기 관리등용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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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쿠빌라이 집권 초기 관리등용의 양태를 탈중국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종래의 ‘李?의 난 이전 漢人儒士 重用’ 견해를 비판하고, 그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쿠빌라이는 潛邸시기부터 치세 말기까지 줄곧 한인유사의 높은 지위·권한을 보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한지를 다스리는 유용한 수단으로써 儒學이 보유한 일부 실용성과 정권확립을 위해 필요한 한인유사의 실용적 지식·재능만 중요시하고, 유학의 본질적 이념·가치와 한인유사의 유학적 소양, 학문수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는 실무능력을 결여한 대부분의 한인유사를 일관되게 불신·배척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 결과 한인유사의 정치·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은 몽골시대 사회계층 안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없었다.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쿠빌라이의 人才觀은 집권 초기 중앙·지방관청에 관리를 등용하는 데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는 우선 몽골의 전통적 귀족가문과 비몽골계 공신가문 출신 인물을 최고위직에 임명하여 그들의 우월한 지위·권한을 보장했다. 그리고 오로지 실무적 경험·지식·재능만을 평가하여 漢人文士를 그 아래 직책에 기용했다. 한인관원의 수는 비 한인에 비해 현저하게 많지 않았고, 비록 그들 대부분이 유학을 깊이 탐구한 지식인이었지만, 관리등용 후 정치일선에서 유학적 이념을 실천하는 전형적인 ‘儒士’의 면모를 드러낸 인물은 소수에 불과했다. 쿠빌라이의 관리등용 성향은 王文統에 대한 두터운 신임·중용에서 잘 드러난다. 신정부 출범 직후 燕京行省 平章政事에 임명된 왕문통은 탁월한 재정운용 능력을 발휘하여 정권의 기초확립에 공헌한 전형적인 실무관료였다. 일부 정통 한인유사(眞儒)들이 유학적 이념을 내세워 그의 정치를 비판했지만, 쿠빌라이는 그의 비범한 재능을 귀하게 여겨 반대세력의 공세 속에서 그를 적극 비호하고, 정통 한인유사를 고위관직에 임명하지 않았다. 이 같은 그의 관리등용 성향은 이단의 난 후 재무관료 아흐마드를 중용할 때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므로 집권 초기 쿠빌라이가 漢化 경향에 입각하여 한인유사를 중용하고, 이단의 난을 계기로 그의 관리등용 방침이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종래의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히려 그가 잠저시기부터 치세 말기까지 줄곧 유능한 실무관료를 중시하고, 실무능력을 결여한 한인유

Ⅰ. 머리말 Ⅱ. 쿠빌라이의 儒學·儒士에 대한 인식 Ⅲ. 중앙·지방 관원의 구성과 성격 Ⅳ. 王文統 - 漢人儒士 대립과 쿠빌라이의 입장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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