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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明使 姜曰廣의 朝鮮 使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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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세기 전반 조선을 대하는 명의 태도와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식을 天啓 6년(1626)에 사신으로 파견된 姜曰廣의 ??軒紀事?를 중심으 로 고찰하였다. 이 시기 명 조정이 주변국을 대하는 태도는 창업군주인 洪武帝의 대외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건국 초기 명조는 이상적인 질서가 갖춰야 하는 요건들을 정하고 그 내용을 채워냈고, 그것을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로까지 확대하였다. 이러한 틀에 따라, 명의 사신들은 조선의 제도와 문물이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와 연결된 것이고, 명과 뿌리가 같은 문화와 역사를 공 유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평가들이 이어졌다. 이렇듯 문사와 예의에 대한 언급들은 명과 조선이 같은 프레임 안에 머물게 하는 장치였다. 이 프레임 은 홍무제가 예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구축하고자 한 이래 17 세기 전반까지 그대로 계승되고 있었다. 이처럼 이 글에서는 명의 사신들이 조선을 대하는 방식에는 일정한 패 턴이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이 때문에 강왈광을 비롯한 명의 사신들은, 조선의 제도, 문물, 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내용에서는 그 수준이 높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그 평가는 조선의 것이 중국의 것과 얼마나 비슷한 지를 살펴보는 것이 기준이었다. 이는 같은 틀 안에 있다는 점을 계속 강 조하는 것인데, 이것은 조선 측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조선 측이 ‘중화’를 닮기 위해 노력하고, 그 프레임 안에서 위상을 확인받으려는 시도가 명의 의도를 수용하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 데 활용되었다.

Ⅰ. 머리말 Ⅱ. 17세기 초 동아시아와 사신파견 1. 명 중심의 국제질서 동요 2. 姜曰廣 파견의 목적 Ⅲ. 文事와 禮儀의 틀 1. 계승되는 프레임 2. 명이 조선을 대하는 태도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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