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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五臺山史庫本 實錄의 還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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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일본 동경대학 도서관에 수장되어 있던 오대산본 ?朝鮮實 錄? 잔본 47책이 국내로 귀환되었다. 오대산본 ?朝鮮實錄? 잔본이 귀환된 것은 꿈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문화재를 선별해 귀중 문화재를 반환 대상에서 제외하고, 문화재 강탈을 보여주는 문서는 반환하지 않기 위해 조직적으로 은폐한 일본을 상대로 반환해온 것이다. 이는 慧門스님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朝鮮王朝實錄還收 委員會가 이룬 쾌거였다. 朝鮮王朝實錄還收委員會는 일본 총리에게 실록 반환요청서를 제출한 뒤 직접 동경대학과 접촉을 시도하였다. 이후 여러 과정과 난관을 거쳐 마침 내 오대산본 ?朝鮮實錄?은 귀환되었다. ?朝鮮實錄? 잔본 47책의 귀환 작 업이 모두 끝나자 文化財廳은 문화재위원회 국보지정분과위원회를 열어 국보 제151호에 추가하여 지정하였다. 오대산본 ?朝鮮實錄?의 환수에는 慧門스님의 진심어린 발원과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月精寺의 지원이 환수에 결정타가 되었다. 이외 국내 유력자, 북한의 朝鮮佛敎徒聯盟과 在 日本居留民團의 협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대산본 ?朝鮮實錄? 환수의 마무리 단계에서 몇 가지 문제가 노정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 문제의 단초는 서울대학교가 ?朝鮮實錄?을 “返還”이 아닌 “寄贈”받은 것에서 기인된다. 오대산본 ?朝鮮實錄?의 귀환은 조선시대 마지막 관리자였던 月精寺가 당사자로 나서서 ‘법정소송’을 불사하고, 동경대학을 압박한 것이 주효한 것이었다. 동경대학은 ‘일본 지 성을 대표하는 기관’에서 ‘문화재 약탈자’로 지목되어 법정에 선다는 것에 부담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에 실록의 약탈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궁지 에 몰린 동경대학은 실록 반환 문제가 제기되자, 처음부터 출구전략을 세 우기에 골몰하였고, 마침내 자매대학이란 명분을 이용해 서둘러 서울대학 교에 ‘기증’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이에 동경대학은 ‘기증’, 서울 대는 ‘반환’이란 용어로 포장한 것이다. 결국 ‘빼앗긴 민족의 자존심’을 살 리고, ‘기록된 역사의 정신’을 되찾아 오고, ‘민족사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반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Ⅰ. 緖言 Ⅱ. 五臺山史庫本 實錄 Ⅲ. 五臺山史庫本 實錄의 侵奪 立證 1. 實錄의 侵奪 2. 實錄의 掠奪 立證 過程 Ⅳ. 五臺山史庫本 實錄의 還收 1. 實錄의 還收 準備 2. 實錄의 還收 活動 Ⅴ. 實錄의 歸還이 남긴 敎訓 Ⅵ. 結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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