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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五臺山史庫의 立地와 四溟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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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亂은 城內에 보관하는 史庫가 외부적인 재앙에 의해서 의외로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문제를 노출했다. 이렇게 해서 대두되는 것이 바로 ‘名山 의 보관’과 ‘사찰의 수호’라는 이중구조이다. 본고는 오대산사고와 관련해 서 이 부분을 주목해서 다룬 것이다. 물론 오대산에 사고가 설치되는 과정 에는 오대산과 깊은 인연이 있고, 왜란의 극복과정에서 공로가 큰 사명당 의 영향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자에 대한 합리적인 정립은 오대 산사고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먼저 제Ⅱ장에서는 오대산의 ‘터와 관련된 吉地’와 ‘불교성 지로서의 聖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정리한다. 이는 사고설치와 관련해 조정에서 허용하는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오대산사 고가 왜 靈鑑蘭若에 들어서게 되는지에 대한 배경이해를 위하여, 오대산사 고가 들어서게 되는 영감난야에 대한 특징과 변천에 관해서도 정리하였다. 다음으로 제Ⅲ장에서는, 오대산사고가 설치되는데 있어서 사명당 역할 의 개연성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왜 하필 영감난야에 오대산사고가 들어서야 하는지에 관해서 明堂論과 당시의 상황이라는 관 점에서 정리하였다. 이러한 연구접근은, 사고가 왜 오대산에 들어서게 되는지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을 확보하게 한다.

Ⅰ. 序論 Ⅱ. 오대산 明堂 인식과 靈感菴 1. 오대산 명당 인식의 유래 2. 오대산 佛敎聖山 인식과 寶宮 3. 오대산 靈感菴의 역사적 위치 Ⅲ. 오대산사고의 입지 선정과 사명당 1. 外史庫의 변화와 守直寺刹 2. 오대산사고의 입지와 사명당의 영향 3. 오대산사고와 입지와 명당 인식 Ⅳ. 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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