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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고려 공민왕대 대중국 사신 인선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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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고려 공민왕대(1351~1374) 원ㆍ명 조정에 파견한 사신의 특징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이 시기는 중원의 주인이 몽골족의 원에서 한족의 명으로 교체되는 등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큰 격변기였으며, 고려 국내 정치 역시 대륙의 정세 변동과 연동하여 다양한 정치세력이 큰 폭의 부침을 겪었던 시기이다. 따라서 조정을 대표하여 중국에 파견되는 사신을 누구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내 정치 세력의 향배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공민왕대에는 원ㆍ명 조정에 총 96회의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그 가운데 인명이 확인되는 것은 총 81명에 이른다. 사신 인선의 특징을 사신 개인과 관직으로 나누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신 개인의 특징으로는 첫째, 사신 가운데에는 국왕의 측근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 많았다. 둘째, 중국에 거주했던 경험이나 중국과의 왕래가 잦았던 인물이 많았으며, 따라서 중국어에 능통한 인물이 많았다. 셋째, 여러 차례 사신으로 선발된 인물은 거의 없었는데, 이는 충렬왕~충선왕대에 소수의 인물이 외교 임무를 도맡아 수행하던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넷째, 사신 가운데 문신이 다수였으나, 무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다섯째, 문신 가운데 과거에 급제한 경력을 가진 인물은 10%에 미치지 못하며, 이후 조선을 건국한 주역으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친명파 신흥유신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사신이 띠고 있던 관직의 특징으로는 첫째, 사신의 관품은 거의 대부분이 2품 내지 3품이었다. 둘째, 문관직이 무관직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소수이나마 무관직이 포함되어 있었다. 셋째, 사신 파견을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로 존재하지는 않았으나, 사신이 띠고 있던 관직 가운데 최고 정무기구라고 할 수 있는 僉議府와 密直司 소속이 전체의 45%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일반적으로 고려에서 원에 파견하는 사신으로는 국왕 측근으로서 어학 능력을 갖춘, 비정통 관료가 많았고, 반면에 조선에서 명에 파견하는 사신으로는 과거 출신으로서 문필 능력을 갖춘 정통 관료들이 많았다. 공민왕대에 고려에서 원과 명에 파견한 사신의 특징을 종합해보면 두 시기의 특징이 중첩되면서도, 점차 전자에서 후자로 전환되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Ⅰ. 서론

Ⅱ. 시기별 사신 인선의 특징

1. 공민왕 즉위년~5년 6월

2. 공민왕 5년 7월~8년 12월

3. 공민왕 9년 1월~13년 9월

4. 공민왕 13년 10월~18년 4월

5. 공민왕 18년 5월~23년 11월

Ⅲ. 공민왕대 사신 인선의 몇 가지 특징

1. 사신 개인의 특징

2. 사신 관직의 특징

Ⅳ. 결론을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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