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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조선 중기 우계 성혼 유적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기념관 개선 방향 - 성수침, 성혼묘역과 파산서원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Value of Ugye Seong Hon’s Historical Sites and Enhancement Plan of Memorial Hall in the Middl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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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향양리에 있는 성혼선생묘역에는 청송 성수침과 우계 성혼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성수침 은 파산에 은거하면서 아들 성혼에게 은일거사의 처신과 학문적 영감을 준 사람으로 그의 죽음에 는 당대 최고의 명망있는 성리학자들이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의 지문은 고봉 기대승이 찬술했고, 행장은 율곡 이이가 지었으며 묘갈은 퇴계 이황이 직접 짓고 적었다. 이들은 평소 성수침의 지조와 절의, 학문적 성과를 높이 평가해 흠모해 왔던 학자들로서 그의 죽음을 통해 대학자들의 결집이 이뤄졌다. 무엇보다도 이황은 묘갈문을 평소 공기(公器)라 생각해 지인에게조차 신중하고 사양해 왔기에 현존하는 그의 비지문은 많지 않다. 또한 묘갈음기에는 이 비를 가리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써 시말을 대자로 새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당대에도 희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성수침과 성혼의 묘역조성과정을 살펴보면 정치?사회?문화사적인 요소가 묘역 곳곳에 담겨 있다. 특히 성혼의 조부 사숙공 성세순의 묘를 중심으로 하여 주자가례의 기본을 지키고, 부친 성 수침, 숙부 성수종의 묘는 효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주자가례와 풍수상의 이유로 성혼의 부인이 장좌리에 따로 장지를 정한 것은 성리학적 전통과 풍수적 요소의 결합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의미 에서 성수침의 묘갈문과 성혼의 신도비는 묘역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재고될 필요 가 있다. 또한 이곳에 건립된 우계기념관은 그의 삶과 행적은 반영했지만 묘역과 서원연구는 충분 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추후 콘텐츠의 보완이 필요한 실정이다. 묘역이 죽음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삶과 관계되는 것은 성수침, 성혼의 생가와 서실이 있던 파산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1871년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신미존치47개 서원에 해당된다. 파산서원 은 이러한 명성과 달리 사우를 중심으로 한 조그만 서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1933년 동아일보 사진이 발굴됨으로써 우계천을 마주한 강학공간이 중심이며 유식, 강학, 제향공 간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른 바 좌학우묘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간 연구가 미진한 우계묘역의 비문과 석물의 해석을 통하여 묘소조성과정의 역사적인 사실과 상호연관성을 확인함은 물론 성수침과 성혼의 도학자적 면모를 죽음 관련 공간을 통해 음 미할 수 있음

Ⅰ. 머리말

Ⅱ. 성혼선생묘역의 석물에 나타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

Ⅲ. 파산서원의 역사적 변천과 건축적 특징

Ⅳ. 우계기념관의 현황과 박물관적 활용방안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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