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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고구려 ‘황성’시대에 대한 시론
An essay on the ‘Hwang-seong’ period of Kokuryo
- 복기대
- 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
- 예술인문사회융합멀티미디어논문지
- 6권 1호
- 2016.01
- 393 - 408 (16 pages)
현재 한국 역사학계는 1900년대 일본의 도리이 류조(Torii ryuzou)등 일본학자들이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인 국내성을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로 비정한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은 국내성에 대한 인 식은 길림성 집안시로 인식하고 있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이 집안시를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 등 약 간씩 다르게 인식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인식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 심각한 오류를 야기시겼고 심지어 『삼국사기』기록을 고의로 다르게 읽는 일까지 발생시켰다. 그러나 『삼국사기』기록을 바로 잡아 보면 집안은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아니라 고국원왕이 천도한 고구려의 여섯 번째 도읍인 ‘황성(皇城)’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집안을 황성이라 한 것은 다른 기록에서도 볼 수 있는데 『동국 여지승람』기록에는 조선시대 이 지역을 황성평(皇城坪)으로 읽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 관련 자 료를 근거로 해보더라도 현재 국내성이라고 인시되고 있는 성터가 서기 4세기 중반기에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국원왕이 황성으로 옮기고 장수왕이 평양(平壤)으로 천도할 때까지 100년 가까 운 이 시기를?황성시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 머리말
2. 기록에 대한 검토
3. 황성시대의 고고학적 검토
4. 맺음말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