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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우수등재 학술저널

신라말~고려시대 선종사원의 배치변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Layout of Seon Buddhist Temples from the Late Silla to Goryeo Period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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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선종 도입기 시대상황과 상원영역의 구성과정을 고찰하여 신라말~고려시대 선종사원의 배치변화를 밝히는 데 있다. 선종이 도입되던 신라말은 전란으로 사회가 혼란하여 선승들이 대중을 교화하고 편안하게 宴座할 수 있는 도량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시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승들은 대부분 기존 사원(터)에 건물을 부분적으로 해체ㆍ수리해 가면서 선원을 개창하였다. 이에 고승들의 행적을 기록한 금석문과 그동안 발굴된 유구를 중심으로 法堂의 본원적인 의미와 고대불교사원의 講堂에 중세선종사원의 법당이 이입되면서 형성된 상원영역 변화과정을 고찰하여,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불교사원의 연속성을 해석해 보려 한다.고대사원의 강당이 講說 외 공적인 기능을 겸행했던 것과는 달리 강당에 이입된 법당은 說法하는 공간으로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였다. 곧 대규모 법회나 제사 등의 행례가 이루어지지 않아 기능이 축소되자 건물의 규모도 줄어들었고, 평면형도 설법과 문답에 유리한 방형평면으로 변해 갔다. 더불어 고대사원의 강당 좌우에 위치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은 선종사원이라는 특색이 부가되면서 법당과 대등하면서도 연관관계를 맺는 方丈과 影堂으로 바뀌게 되었다. 법당과 방장 그리고 영당으로 이루어진 이 영역을 上院이라 한다. 선종사원의 배치변화를 살펴보면, 9~10세기에는 산간에 지어진 소규모 선원은 가장 기본적인 두 동 구성에서 출발하였고, 9세기 중엽~11세기가 되면 강당 자리에 들어섰던 법당 좌우로 방장과 영당이배치되어 상원영역을 형성하게 된다. 12세기 이후가 되면 선종사원의 상징적 위치를 점하던 법당 중심 의 상원영역의 중심축선상 이탈과 영역의 재구성으로 다원화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간다. 이처럼 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장과 영당을 두는 상원영역의 형성과 해체는 사제 간의 불법전수를 통해 철저한 계승관계를 유지하려 하였던 한국선종사원 배치변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In the late Silla period when the Seon School was first introduced into Korea, there was social turmoil and Seon monks had difficulty in establishing temples wherein they could teach the public in relative comfort. This situation forced most Seon monks to establish their own temples by partly dismantling and repairing pre-existing temples. At that time, many Seon monks went to China to seek the Dharma and personally experienced the Chinese Seon temple system. Naturally they wanted to emulate the same system when they returned to Korea. However, considering the times and the social circumstances, it was probably difficult for them to establish Seon temples on new sites. Still, they seem to have tried hard to at least establish a central building of high status and symbolic meaning, and this building was the Dharma hall. A beopdang is a space wherein the abbot teaches Dharma on behalf of the Buddha, and this function of the beopdang overlapped with the function of the lecture hall of ancient temples. Because it was not used for large Dharma gatherings or memorial ceremonies, the function of the beopdang was eventually reduced, resulting in a reduction of its size and a change in the building’s shape. They also had equal status with the beopdang and maintained a spiritual connection to it. This area was called the upper monastic area, and it became a defining characteristic of Korean Seon temples.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can be found in two respects. First, it interpreted the features of Korea’s early Seon temples based on the appearance and development of the beopdang and, at the same time, provided a clue to understand the unbroken relationship between ancient Buddhist temples and medieval Buddhist temples through the role of the beopdang whose function overlapped with that of the lecture hall. Second, it provided a new perspective to interpret the Seon temples of the late Goryeo period which had multiple functional areas on a continuum, beginning with early Seon temples, by explaining how the upper monastic area, consisting of a beopdang, an abbot’s quarters and an ancestral hall, was dissolved and came to deviate from the central axis of the temple compound.

Ⅰ. 머리말

Ⅱ. 나말려초 선종사원 上院의 구성

Ⅲ. 講堂에 移入된 法堂의 특징

Ⅳ. 신라말~고려시대 선종사원의 배치변화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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