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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우수등재 학술저널

토기문화로 본 삼국시대 낙동강하구의 교류양상

Cultural Interchange at the Nakdong River Mouth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from the Perspective of Pottery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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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낙동강하구는 금관가야의 중심지이고, 내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관문지로서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었다는 것은 다수의 고고자료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토기자료는 당시 존재했던 주변집단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연구에서는 이질적인 토기문화를 찾아내고, 그 의미를 정치적 문제와 연결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양한 교류의 양상을 해석하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교류된 토기문화를 유입형・재현형・모방형・절충형 등의 개념으로 정리하고, 주변지역과의 교류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토대로 4~5세기 대 낙동강하구의 토기문화 교류양상을 살펴본 결과, 4세기 대에는 하구역-함안, 하구역-창녕-합천-경산, 하구역-왜와의 교류양상이 확인되었으며, 각 집단 간의 교류로 생겨난 토기문화에는 4가지 유형이 모두 확인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함안과의 교류에서는 유입형과 재현형이 일반적이고, 왜와의 교류에서는 절충형을 중심으로 모방형과 유입형이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창녕-합천-경산과는 현재까지 자료가 적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렵지만 유사한 토기가 다수 확인되는 점에서 토기생산 정보의 교류는 분명히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5세기는 신라-가야양식 토기가 분화되고, 낙동강 서안에서는 제 가야토기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하구역도 낙동강을 경계로 동・서안의 교류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였다. 구체적으로 서안의 경우 소가야, 대가야의 영향을 받은 토기들이 다수 출토되는 반면, 동안은 제 가야 지역과의 교류를 밝혀줄 토기문화가 극히 적은 편이다. 이는 동안지역이 신라의 진출과 함께 신라토기 문화권으로 흡수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창녕식토기와 같이 동・서안에 관계없이 양 지역에 모두 분포하는 토기문화도 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대에는 각 지역의 토기생산기술이 최고조로 발달하면서 교류된 토기의 유형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지만, 대가야토기의 경우 창원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지와 분묘군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이동 후 재현형, 혹은 모방형이 하구역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 Nakdong River mouth area was the central district of Geumkwan Gaya. As a place where land and ocean meet, this area witnessed the influx of various cultures, as can be seen in the archaeological evidence. Among this evidence, pottery can be used as a suitable data set which may help us understand Geumkwan Gaya’s relations with other countries. As a result, the pottery was categorized into four types: the influx-style, reproducing style, copying style, blending style. In examining aspects of the interchange of pottery cultures during the 4th~5th century, it was possible identify several routes of interchange: the Nakdong River mouth to Haman route, the Nakdong River mouth to Changneyong to Hapcheon to Kyeongsan route, and the the Nakdong River mouth to Japanese Wa route. In the 5th century, the Silla-Gaya developed and diverged,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Gaya pottery culture in the area west of the Nakdong River. It was observed that, at this time, the nature of interchange differed in the areas west and east of the Nakdong River mouth. To be specific, in the west bank area, pottery influenced by So-Gaya and Dae-Gaya has been excavated, whereas the east bank area evidences little pottery data that points to interchange with the entire Gaya region. It is thus possible to conclude that, with the advance of Silla, the east bank area was assimilated into the Silla pottery culture. It thus appears that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re was an inflow of various pottery cultures through a wide range of cultural interchanges in the area of the Nakdong River mouth.

Ⅰ. 머리말

Ⅱ.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1. 式·産·系

2. 교류토기의 추출과 유형

3. 대상범위의 설정 및 편년

Ⅲ. 4세기 대 토기문화와 교류양상

1. 고식도질토기문화 내에서의 낙동강하구양식

2. 4세기 대의 교류양상

Ⅳ. 5세기 대 토기문화와 교류양상

1. 하구양식의 붕괴와 分化

2. 5세기 대의 교류양상

Ⅴ. 교류토기로 본 4~5세기 하구역의 교류양상-맺음말을 대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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