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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우수등재 학술저널

墳墓 築造 社會의 開始

The Beginning of Grave Constructi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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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동북아시아에서 지석묘가 가장 밀집한 곳인데도 정작 분묘 연구는 송국리 단계에만 집중되어 왔는데, 다행히 근래에 와서 전기 분묘 자료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여기서는 전기 분묘를 크게 토광묘·석관묘·지석묘·주구묘로 구분하여 살펴본 결과, 모두 전기 후반에 속하며 그 속에서도 토광묘와 석관묘가 조금 이른 시점에, 지석묘와 주구묘는 다소 늦은 시점에 출현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일부 주구묘를 제외하고는 후기처럼 군집하지 않으며 단독 혹은 두기 배치가 많고, 충적지와 같은 평지도 있지만 주위를 조망하기 좋은 구릉 정상부 및 능선과 이어지는 말단부에 입지한다. 또 보강석·관대·목탄·암갈색부식토 등을 통해 목관의 존재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의례와 관련한 흔적도 전기 분묘에서부터 가시적으로 확인된다. 동일한 부장습속을 보이는 전기 분묘는 종류별·지역별 편중 없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어느 특정 지역을 기점으로 확산되었다기보다는 남한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개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남한 전기 분묘의 기원 및 원류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지에서 이전 시기와 연결되지 않고 동일한 부장습속과 함께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현상을 볼 때 외부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중요한 곳이 중국 동북지역인데, 최근 화성 동화리유적과 광주 역동유적의 분묘에서 굵은 목탄과 인골편이 출토된 바 있다. 요동지역의 지석묘에서도 화장인골이 상당수 확인되고 있는 점은 양 지역 간의 관련을 생각하게 한다. 선사~고대의 분묘는 계층·의례·사회적 성격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분묘 축조가 일반화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취락구조 및 사회적 복합도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분묘 축조의 개시는 해당 사회를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 큰 획기가 될 수 있는데, 전기 후반은 분묘 축조뿐만 아니라 대규모 취락의 형성, 동검의 출현, 횡대구획문토기의 등장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나는 단계이다. 즉 전기 전반의 무문토기사회를 한 단계 향상시켜 송국리문화와 같은 발달된 농경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전기 후반 남한 전역에서 시작되는 분묘 축조의 개시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존의 전기 후반은 하나의 큰 획기이므로 ‘중기’라는 독립된 시기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The Korean Peninsula is where the dolmens are the most densely concentrated in Northeast Asia but research on these grave has been focused on the Late Mumun Period. Fortunately, however, the graves of the Early Mumun Period are continuously being identified. In this study, the graves of the Early Mumun Period are largely divided into wooden coffins, stone coffins, dolmens, and jugumyo. These graves are mainly found in isolation or form pairs, and are located on the distal ends connected to the hilltops and ridges. They were evenly distributed throughout the peninsula which no regional preference in terms of type, and a common burial custom was shared. As for the origin and source of the graves of the southern part of Korea in the Early Mumun Period, we can not exclude external influences given that the graves, which are distributed throughout the country and demonstrate a common burial custom, are not connected to the previous era. An important place that we should consider at this time is the northeastern region of China. Traces of cremation were recently identified in the graves of the Early Mumun Period, which makes us think of their relationship with the dolmens in Liaodong of China, where many cremated human bones were identified. The graves of the prehistoric to ancient period symbolically demonstrate hierarchical, ceremonial, and social characteristics, and societies where grave construction was generally conducted illustrate a significant difference in settlement structure and social complexity, compared to other societies. Therefore, the opening of the era of grave construction can be regarded as a very epochal event when the relevant society is viewed diachronically; the latter part of the Early Mumun Period was the stage where various new elements appeared alongside grave construction. It may thus be argued that grave construction, which began throughout the southern region of Korea in the latter part of the Early Mumun Period, played a key role in the development of Early Mumun Society into the Songgukri culture, which may be regarded as having had the most developed farming culture in the prehistoric era. Accordingly, as the latter part of the existing Early Mumun Period may be approached as a great breakthrough in Mumun earthenware society, it can be regarded as an independent era called ‘the Middle Mumun Period.’

Ⅰ. 머리말

Ⅱ. 無文土器時代 前期 墳墓 硏究의 現況

Ⅲ. 前期 墳墓의 事例

Ⅳ. 特徵과 分布

Ⅴ. 築造 背景과 源流

Ⅵ. 劃期와 時期區分 ― 新 中期論의 一步 ―

Ⅶ.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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