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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우수등재 학술저널

雷斧考

On the Thunder-a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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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옛 문헌에서 선사시대의 돌도끼는 雷斧라 불렸으며, 그에 대한 기록은 15세기 중반부터 찾아볼 수 있다. 雷斧는 中國에서 들어온 용어로서, 천둥과 번개를 주재하던 雷神의 도끼가 땅에 떨어진 것이라는 語源的의미를 갖고 있다. 雷斧가 특별한 藥效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唐代이래 널리 퍼졌으며, 각종 醫書에도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한편, 宋代性理學의 확립과 더불어 雷斧는 단지 氣의 순환에 따른 自然物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제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雷斧는 淸代에도 여전히 신비스러운 것이었다. 朝鮮王朝實錄의 기록은 朝鮮初期에 雷斧가 깊은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한 관심은 일차적으로 藥材로서의 效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星湖僿說과 五洲衍文長箋散稿의 기록은 朝鮮後期에도 世間에서는 雷斧를 계속 신비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음을 시사해주는 듯하다. 實學의 勃興에도 불구하고, 朝鮮後期秋史의 제한된 활동을 제외하고는 古代의 遺産에 대한 여하한 관심도 표출되지 않았던 것은 당대의 性理學的宇宙觀과 支配秩序아래에서 당연한 일이었다고 보인다.

Prehistoric stone axe had been known as thunder-axe in Korea. Its earliest known description dates from the 15th century during the early Chosun(조선; 朝鮮) Dynasty. In China, mentions of the thunder-axe, or the axe of the thunder god with medicinal potency, are found among the records of the Tang(唐) Dynasty. Such understanding spread widely during the Song(宋) Dynasty. At the same time, however,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Xinglixue(性理學), or the Zhuxi(Chu Hsi[朱喜]; Zhuzi[Chu Tzu; 朱子]) branch of Confucianism, an explanation appeared that such axes would be the product of nature resulted from the circulation of qi(氣). Nevertheless, more secular conception continued to thrive into the Qing(淸) Dynasty. While stone axes were also sought after during the Chosun Dynasty, it nevertheless appears that philosophical explanation given by scholars of the Song China had been more widely accepted in Korea than in China. The almost total lack of any kind of antiquarian interest in the past during the late Chosun period, despite the emergence of Sirhak(실학; 實學) tradition, might well be explained when the strong influence of Neo-Confucianism upon the Chosun society is taken into consideration.

Ⅰ. 머리말

Ⅱ. 朝鮮王朝實錄과 雷斧

Ⅲ. 星湖僿說과 五洲衍文長箋散稿

Ⅳ. 雷斧

Ⅴ. 大全本草

Ⅵ. 本草綱目

Ⅶ. 雷州와 雷書

Ⅷ. 博物志와 玄中記

Ⅸ. 淮南子, 周易, 嶺表錄異, 國史補

Ⅹ. 太平廣記와 夢啓筆談

ⅩⅠ. 기타 자료

ⅩⅡ. 胡寅, 朱子와 蔡季通

ⅩⅢ.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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