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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우수등재 학술저널

백제 왕흥사 초창기 기와 수급체계에 대한 계량적 연구

A Quantitative Study on the Supply and Demand System of Roof Tiles in the Early Period of Construction of Wangheungsa Temple of the Baekje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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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왕흥사지와 동편 와요지는 백제에서 기와의 근거리・일대일 수급체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 다. 동편 와요지 생산 기와가 왕흥사 건설 현장에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왕흥사 건립에 필요했던 기와 의 수량과 동편 와요지의 생산량을 각각 추정하여 두 유적의 기와 수급관계를 재검토했다. 초창기 왕흥 사의 암・수키와 수요량은 대략 160,000~210,000매로, 동편 와요지의 생산량은 16기 전체가 동시 조업 했을 때 8,600매 가량이었던 것으로 산출했다. 하지만 유구에 남은 번조 횟수 관련 흔적들로 보아 기와 수요량에 비해서 요장의 생산량이 부족했다고 파악했다. 즉 왕흥사 초기 기와 생산에 복수의 요장이 참 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두 소비・생산유적에서 보이는 수급량의 불균형은 우연의 결과라기보다는 관료제와 관영공방이 정 착된 사비 지역의 중장기적 기와 수급 계획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와 관련하여 6세기 후 엽 가시화된 익산 개발, 588년 와박사의 도왜, 6세기 후엽~7세기 초의 자연재해 등 3가지 백제의 대내 외적 환경을 언급했다. 이로 인한 제와 장인 조직과 자원의 재편 및 재분배 정책 속에서 동편 와요지 그 리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또 다른 요장들의 규모와 생산량이 조율됐을 것으로 해석했다. 동편 와요지에서 생산된 수막새가 111D-17・18형식에서 111C-12・15형식으로 교체되는 정황, 3단계에 걸친 가마 구조의 변화, 중간 단계의 가마들이 보여준 저조한 조업 실태는 관청에 의한 장인 조직의 재 편과 생산량 조정을 암시하는 고고학적 물증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Wangheungsa Temple Site and the Eastern kiln site in Buyeo are considered to represent the supply and demand system of the area within a short-distance range. The roof tiles produced at the Eastern kilns are believed to have been supplied to the construction site of Wangheungsa Temple. Against this backdrop, the present study calculated the number of roof tiles needed for the construction of Wangheungsa Temple and the production capacity of the Eastern kilns. During its foundation period, Wangheungsa Temple would have needed 160,000-210,000 roof tiles; the production capacity of the Eastern kilns stood at 8,600 per session. Taking into account the evidence for the number of firing sessions, it is possible to establish that the amount of tiles produced within the kilns would not have been enough to meet the supply needed for the construction of Wangheungsa Temple. Therefore, contrary to the existing belief, it is highly likely that several roof tile workshops were involved in the construction of Wangheungsa Temple. At the time that the Eastern roof tile kilns were in operation in Sabi (Buyeo) in the late sixth century, Baekje had established a bureaucratic system and had run government operated workshops. It is likely that the development of Iksan, the dispatch of Wabaksa to Wa (Japan), and a number of natural disasters that occurred around this time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development policies of the Baekje capital, Sabi. More specifically,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the reorganization of craftsmen and the resource re-distribution policy had an influence on the size and amount of production of government-operated workshops. The imbalance between the demand for roof tiles for Wangheungsa Temple and the production that took place at the Eastern roof tile kilns should be considered in this context.

Ⅰ. 머리말

Ⅱ. 왕흥사지 초기 기와 수요량 분석

Ⅲ. 동편 와요지 기와 생산량 복원

Ⅳ. 왕흥사지 기와 수급체계의 특성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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