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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구카이의 종예종지원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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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진언종(眞言宗)의 개조 구카이(空海, 774~835)는 일본 천태종(天台宗)의 개조 사이쵸(最澄, 767~822)와 함께, 헤이안불교의 좌표를 뚜렷하게 제시한 인물로 알려 져 있다. 구카이가 804년에 견당사를 따라 당의 장안에 들어가 공부한 후, 806년에 귀국하면서 들여온 것은 진언밀교(眞言密敎)를 포함한 종합적인 문화체계였다. 구카 이는 『삼교지귀(三?指?)』와 『비밀만다라십주심론(秘密曼?羅十住心論)』을 저술하 여 유교, 도교, 불교에 대한 비교사상론을 보여주는 한편, 열 가지 마음의 존재 양상 (十住心)을 단계적으로 풀이하면서 진언밀교의 교의가 최고의 단계이자 구극의 진실 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구카이는 학교교육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교토에 사립학 교 종예종지원(綜芸種智院)을 설립하였다(828. 12. 15). 당시의 교육은, 귀족의 자제 를 대상으로 하는 등 일부에게만 문호를 개방했으나, 종예종지원은 서민의 자제에게 도 문호를 개방한 획기적인 학교였다. 종예종지원은 학교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 는 바와 같이 유교, 불교, 도교 등 모든 사상과 학예를 망라하는 종합적 교육기관이 기도 했다. 그러나 종예종지원은 구카이가 입적한 후 10년 정도 지속되다가 폐교되 었다(845). 현재는 교토의 종지원대학(種智院大?)이 종예종지원의 교육정신을 이어 가고 있다. 진언종의 개조 구카이의 학교교육에 관한 구상과 실천에도 드러난 바와 같이, 진언밀교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큰 지혜와 구극의 진실을 얻 을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그 세속적 가치가 침략과 전쟁의 프로젝트로 구축되었 을 때, 진언밀교 역시 큰 지혜나 구극의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일본의 영광과 번영 을 기원하는 주술체계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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