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1904년부터 1914년까지 일본에서 발행되었던 『교육시론』을 중심으로 거기에 나타난 일본인의 ‘조선 및 한국교육’ 인식을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는 제1-3차에 걸친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한국의 재정․외교․교육의 권한이 일본의 간섭 아래 들어갔고,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한국의 주권이 침탈되었던 때였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변화의 시기에 『교육시론』이 일본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조선 및 한국교육’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첫째, 필진들의 ‘한국인 및 한국문화’에 대한 서술은 혐오에 가까운 비하적 표현에서 한국인의 교육가능성을 인정했던 글까지 다양했다. 둘째, 한국의 교육기관으로 서당은 구태나 구습의 이미지로, 사립학교는 종교계 학교에 주목해 서술되었다. 그런데 이들 학교에 대한 조치는 양적규모나 외국과의 국제적 관계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유학생 수의 증가로 유학생에 대한 인식은 ‘활용’을 강조하는 논조에서 ‘단속’과 ‘규제’를 강조하는 논조로 변화되었다. 이 시기 『교육시론』에 나타난 ‘조선 및 한국교육’에 대한 글은 한일병합 전과 후, 그리고 필진의 한국교육경험에 따라 영향을 받았지만 그 의도가 한국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In this paper, I looked at the perception of ‘Joseon and Korean education’ by Japanese in the KyōuikuJiron which was the educational magazine published in Japan from 1904 to 1914. First, the descriptions of ‘Koreans and Korean Culture’ ranged from disparaging expressions to describing educational possibilities. Second, as an educational institution in Korea, Seodang was described with an image of old school, while private schools were described focusing on religious schools. Third, with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students studying abroad, the perception of foreign students had changed from ‘use’ to ‘restrict’ and ‘regulations’. Although the description of ‘Joseon and Korean Education’ was influenced by whether or not it was pre-1910, there was no doubt that the intention was to ensure the legitimacy of Korean domination.
Ⅰ. 머리말
Ⅱ. 한국인 및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
Ⅲ. 한국인의 교육기관에 대한 인식
Ⅳ. 유학생에 대한 인식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