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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견훤 출생담의 신화학적 검토 : 출생지 또는 출계 문제를 중심으로

A review of legends related to the birth of Kyeunh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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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의 출생지나 출계에 대한 의문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사료상의 착종과 공백으로 인해 역사학계에서는 광주 출생설과 문경[상주] 출생설, 아자개-견훤 부자관계의 긍정·부정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견훤 출생담의 쟁점들에 관해서는 사료 기록의 문면만 맴도는 해석 또는 추론에서 벗어나서, 전설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나아가 신화학 또는 민속학의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역사 전설들이 독자성과 변이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지역사의 맥락에서 형성되고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견훤의 출생지로 거명된 문경과 광주 지역의 전설들을 비교해 보면 그 물량과 다양성의 면에서 문경이 광주를 압도한다. 특히 문경 가은읍과 농암면 일대는 견훤의 출생담, 성장기 일화와 훈련담, 그리고 성터 등의 유적과 지명전설에 이르기까지 풍부하고 다양한 전승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 채록된 성장기 일화와 훈련담은 견훤전설이 전승되어 온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국면이다. 그에 비해 광주지역은 『삼국유사』 「고기」의 야래자 형 출생설화 외에는 다른 독자적 유형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견훤은 문경 가은읍 ‘출신’으로, 적어도 성장기를 이곳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문경이 견훤의 생장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광주 출생설에 대해서는 오류라거나 잘못된 전승이라고 볼 수는 없다. 광주 출생설의 근거가 된 「고기」 자료는 사실적 역사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것은 아니다. 광주는 후백제 건국이라는 혁명적 신화가 이루어진 지역으로, 새 나라의 창업이 이루어졌으니 그 지역을 기반으로 혁명 영웅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견훤의 광주 북촌녀 출생설화는 그렇게 탄생된 신화이다. 따라서 「고기」의 내용은 사실적 역사라기보다는 신화적 역사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경 출생인가 광주 출생인가는 양자택일의 사안이 아니며,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어쩌면 모순된 두 출생설은 견훤의 출생에 대한 다른 담론적 국면을 취한 것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한다. 한편으로 출생지의 다원적 발생은 오히려 전승과정에서 이루어진 신화적 재현의 국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는 혁명아 견훤이 신화적 존재로서 여러 지역에서 인구에 회자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주의 사례도 그러한 신화적 재현으로 볼 수 있다. 상주군 화북면과 화서면에서도 출생설이 확인되는데, 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서 당시의 행정명을 따라 문경 가은을 상주 가은으로 표기한 사실, 또는 견훤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자개가 사벌국 성주였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문경의 가은· 농암과 상주의 화북· 화서지역이 워낙 인접한 곳이기도 하지만, 아자개와 견훤이 부자관계였다면, 아자개를 따라 성장기 견훤의 발길이 이곳 상주까지 미쳤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 밖에도 청도와 장성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견훤산성이 있거나 다른 연고가 있는 지역에서 출생지 신화가 더 재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결국 견훤은 패배한 영웅으로, 고려조 이래 부정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온 역사가 오래 지속되었으므로 그러한 신화적 재현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견훤의 출계(出系)에 대해서는 아자개와 견훤의 부자관계에 대한 긍정과 부정론이 맞서 왔는데, 사료의 문면에 대한 해석에서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남아 있다. 후삼국 전쟁에서 한창 맹위를 떨치던 장남 견훤을 뒤로 하고 태조에게 귀부한 아버지, 장군으로 당시 세상에 이름을 날렸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맏형의 거사에 참여하지 않은 남자형제들의 모습은 견훤의 친부이거나 친형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면면이다. 이는 견훤이 15세에 아버지의 성인 이(李)를 버리고 독자적으로 견(甄) 성을 취한 일과 더불어 견훤의 출계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더라도 역사학계의 한 쪽 주장처럼 부자관계가 아니라고 하고 말 일은 아니다. 실제 역사로부터 200여 년 후에 씌어진 정사서에 아자개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 「이제가기」라는 이씨 가문의 세보에도 가족관계로 올라있는 사실을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 이 상황을 전통 혼속의 관점에서 추론해 보면, 견훤- 아자개의 관계는 주몽- 금와왕의 관계와 방불한 면이 있다. 유화가 주몽을 잉태한 채 금와의 측실로 들어간 것처럼, 견훤의 모가 견훤을 데리고 아자개와 혼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야래자’ 유형의 동숙(同宿) 형태가 ‘서옥’제를 반영한다는 사실, 또한 서옥제의 이러한 ‘잠정적이고 가변적인 혼인형태’가 일부 영웅신화에서 보이는 ‘부계(父系) 부재’ 또는 ‘모자 결속’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The birth of Kyeunheun is a very interesting subject, having several conflicting arguments For this subject, there is a need to rethink the viewpoints of mythology or folklore based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recorded data. Comparing oral materials of two regions, Mungyeong and Gwangju, which are known as the birthplace of Kyeunheun, Mungyeong’s case is overwhelming in terms of quantity and diversity. There are many legends here about his birth and his training during childhood, The various legends about war, in particular, the anecdotes of Kyeunheun’s growing-up years, which were recorded here, are not found in any other area where legends about him have been handed down.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say that he is from Mungyeong as recorded in the historical book of orthodoxy. Kyeunheun is presumed to have lived here at least until adolescence. Of course, it is not unlikely that he was born elsewhere and moved to this place during his childhood. Even so, it also can not be a mistake to claim that he is from Gwangju. It is an error to approach the <Old Record>(고기) datas of Samguk Yusa only from the viewpoint of realistic history. Gwangju is where the post-Bakje was founded and the revolutionary myth of the founding took root. It is natural that the myth of a revolutionary hero was created because a new country was established. It is also natural that the myth was woven into the mythological soil of the founding territory. Thus, the ‘Yaraeja’(야래자) This means “a person who visited at night”. According th this myth, a man visits a woman at night and leaves after they make love ; the woman is left alone to conceive and gives birth. myth, which inherited the Baekje mythology tradition, such as the symbol of dragon and the myth of ‘Mu King’(무왕), emerged. Kyeunheun’s multiple birth places of Mungyeong and Gwangju reflect a sort of mythological representation of that time. It is to prove that Kyeunheun came as a mythical being at that time to win the praise of the people As for his roots, there are conflicting arguments on whether or not he is the son of Asagae(아자개). due to problems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data. A question arises about the father who betrayed his eldest son, Kyeunheun, surrendered to Taejo(태조), and the brothers who were not involved in their great brother s revolution, both unimaginable acts if they were his father or brothers. This raises questions about his paternity and also brings up the incident when he gave up his father s surname at the age of 15 and took on a different one of his own choosing. This does not mean an absence of paternal relations. as some historians claim. In the history books of Goryeo at least, Kyeunheun is recorded as the son of Asagae, and in the Lee family tree, which is called “Ibi Gagi“, theirs is recorded as a family rela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marriage culture and mythology, their relationship is similar to the relationship between Jumong(주몽) and Kumwa(금와). It means that Asagae is Kyeunheun’s stepfather. If you look at it, the uncertain questions mentioned above can be resolved considerably. This is based on the fact that the provisional and variable combination of the form of marriage, ‘Suok’(서옥), which means the house of son-in-law, is related to the union of a mother and son, as seen in some ancient heroic myths. It is also not unrelated to the fact that the regional variation of Kyeunheun s birth legends is concentrated in the ‘Yaraeja’(야래자) type, and there are many variations in which the mother of Kyeunheun appears as a single mother.

1. 서언

2. 견훤 출생담의 전승양상

2.1. 기록 자료의 동이(同異)와 연유

2.2. 구전 자료의 양상과 특징

3. 견훤의 출생지와 출계 문제에 관한 검토

3.1. 견훤의 출생지와 신화적 재현

3.2. 견훤의 출계 문제와 부계 부재의 신화학

4.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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