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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체코군단

Shanghai Provisional Government and the Czechoslovak L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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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공산화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체코 군단이 1918년 체코 건국에 별다른 기여를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정의롭지 못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즉 그들은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전쟁에 참전했고, 특히 신생 소비에트 정부의 목을 조인 반동적인 존재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코군단에 대한 언급이나 연구는 1989년까지는 거의 금기시 되었다. 1989년 이후 새로운 시각으로 군단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자료의 접근, 수집 정리의 어려움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형편으로 국내의 체코군단이나 군단과 독립군과의 관계 등에 관한 연구 역시 단편적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체코군단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지금까지의 독립군과 무기거래라는 일회적, 제한적인 문제 영역을 벗어나 1920년대를 전 후한 동북아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아가 체코군단의 시베리아 철도를 통한 이동은 고대 그리스의 Anabasis에 비교되는 역사적 사건의 한 특이한 형태로서 그 자체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흥미 있는 연구 주제이다. 체코군단과 관련된 국내외의 다양한 사료들을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 분석할 경우 1920년을 전 후한 연해주와 만주, 그리고 간도 지역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사료 된다. 특히 가이다의 열차 등 체코군단에 합류하고 있던 한인들의 존재와 독립군과의 관계를 추적해 보는 작업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체코군단이 이동 중에 발간했던 Czechoslovak Dennik는 중앙아시아와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했던 무명의 다양한 한인들의 행적을 밝혀 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이미 밝혔듯이 독립군들이 총포와 탄약, 그리고 수류탄 등 체코군단으로부터 구입한 무기는 체코제가 아닌 다양한 출처의 “체코군단이 소지하고 있던” 무기였다. 또한 군단이 독립군에게 무기를 판매한 것도 그들이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독립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해서가 아닌 단순한 무기 처분 과정 이었다. 체코군단의 무기를 구입한 사람들은 독립군 외에도 중국인과 러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과 계층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기 판매 행위도 군단의 공식적인 승인 하에서가 아닌 소수 군단병들의 일탈된 행위였다. 가이다 장군의 여운형 등에 대한 환대와 한국독립에 대한 지지 표명, 그리고 귀국 후에도 필설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겠다고 했던 약속 등의 진정성을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가? 부관 한츠를 대동시킨 열차로 귀로의 여운형을 호위해 주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지만 밝혀진 바 귀국 후의 가이다의 행적에서 우리가 크게 주목 할 만 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의 진정성을 믿기는 어렵다. 추측건대 독립군으로 넘어간 무기 중 일부는 가이다가 지휘하던 부대의 무기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시정부의 가이다 장군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컷던 것으로 보인다. 파리 평화 회의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해줄 나라는 없었다. 모두가 한국인의 적인 일본의 우군들이었다. 그런데 유럽의 신생 체코 공화국의 유력자로 보이는 가이다가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을 표명하였다는 사실은 임정 요원들에게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임시정부가 체코 독립기념 은컵을 제작하여 가이다에게 선물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체코슬로바키아나 가이다에 대한 박은식 선생의 기대와 평가도 그야말로 선생의 기대와 희망이었을 뿐이다.

In Czechoslovakia since communization in 1948, there has been a widespread perception that the Czechoslovak Legion had not made any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founding of the Czechoslovak Republic in 1918, nor that its existence itself was just. In other words, they were the frontiers of imperialism and was the reactionary beings who struggled against the fledgling Soviet government. Under these circumstances, references to or studies of the Czechoslovak Legion were almost taboo until 1989. Although military research has been under way in a new light since 1989, research on this field has not yet received much attention due to difficulties in accessing and compiling data. Against this backdrop, research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zechoslovak Legion and the Independent Army in Korea has also remained fragmentary. A systematic study of the Czechoslovak Legion has important implications for understanding the situation in Northeast Asia in 1920s. Furthermore, the movement of the Czechoslovak Legion through the Siberian Railway is an unusual form of historical events compared to Anabasis in ancient Greece, and itself an interesting study subject that attracts our attention. The excavation and systematic analysis of various domestic and foreign materials related to the Czechoslovak Legion is to suggest a lot to the study of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in the regions of Maritime Province of Siberia, Manchuria and Gando in the year 1920s. In particular, it will be very meaningful to track down the existence of Koreans who were joining the Czechoslovak Legion, including the train in Gajda, and their relationship with the Independence Army. Related to these issues, Czechoslovak Dennik, published by the Czechoslovak Legion on the move, is to be a valuable source that can reveal the tracks of various unknown Koreans in Central Asia and the Maritime Provinces of Siberia. The weapons purchased from the Czechoslovak Legion, including guns, ammunition and grenades, were not from the made in Czechoslovakia but from “possessed weapons of the Czechoslovak Legion” from the various country. Also, the Legion’s arms sales to the independent forces were not simply a process of disposing of weapons, not because they thought they would support and help Korea’s independence. The people who purchased the Czechoslovak Legion’s weapons were from a variety of ethnic and class groups, including Chinese and Russians. And arms sales were also an aberration of a small group of soldiers, not under the official approval of the Legion. To what extent should we believe in the sincerity of General Gajda’s hospitality toward Yeo Un-hyung, his expression of support for Korea’s independence, and his promise to publicize the legitimacy of Korea’s independence even after returning to Korea? It is highly unusual that a train accompanied by a deputy Hanc was used to escort him home, but it is hard to believe his sincerity, as it has been revealed that there is nothing much we should pay attention to in Gajda’s tracks after returning home. But we cannot rule out the possibility that some of the weapons that were transferred to the independent forces were those of the troops that were commanded by Gajda. Because there was no country to understand and represent Korea’s position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 Provisional Government’s expectations for General Gajda are likely very high. In the Paris Peace Conference, all of the countries were allies of Japan, the enemy of Koreans. But it must have been very encouraging for Provisional Government that Gajda, seen as the leading figure in Europe’s fledgling Czechoslovak Republic, understood and expressed sympathy for them. It was in that context that the Provisional Government made silver cup for the establishm

Ⅰ. 서론

Ⅱ.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체코군단

Ⅲ. 독립군과 체코군단의 무기 거래

Ⅳ.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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