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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부여의 쇠퇴·멸망 과정과 王室 일족의 동향

The Process of Decline and Fall of Buyeo and the Trend of Royal Family

DOI : 10.22912/dgsh.2020..6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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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지금까지 학계에서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못한 부여의 쇠퇴·멸망과정과 4세기 후반 이후 부여 왕실 일족의 동향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특히 그동안 쟁점이 되어 왔던 ‘西徙近燕’의 의미를 추적하는 한편, 346년 前燕의 침공을 받고 항복한 이후 중원 지역으로 옮겨 간 부여 왕실 일족 및 부여계 인물들의 행적에대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285년 모용선비의 기습적인 침공에 나라가 일시 붕괴하는 상황을 맞이하였던부여는 그 이후로 쇠퇴일로의 역사를 걷게 된다. 330년대 무렵 부여는 건국의 땅이었던 吉林市 일대를 고구려에게 빼앗기고 서북쪽의 農安縣 부근으로 옮겨 갔다. 기록 상에 확인되는 ‘西徙近燕’ 구절의 의미는 부여가 4세기 전반 고구려의 공세에 밀려 農安 일대로 중심지를 옮겼던 상황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農安으로 옮겨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346년 前燕의 침공을 받으면서 부여는 前燕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이후로 부여 왕실 일족은 餘蔚을 위시로 하여 前燕과 前秦 및 後燕의 정계에서 활약하였음이 사료 상에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상을 통해 당시 중원왕조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채 그 미맥을 이어갔던 부여국의 존재도 추측할 수 있다. 또 後燕이 멸망하는 5세기 전반 무렵부터 부여는 다시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 속박되어 5세기 말까지 근근이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세기 말 북방으로부터 남하하는 勿吉의 압박을 극복하지 못하고 494년 왕실이 고구려에 귀부함으로써 부여의 역사는 결국 종막을 맞이하게 된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process of the decline and fall of Buyeo, which has not been specifically reviewed by the academic circles, and the trend of refugees of Buyeo after the late 4th century. In particular, intensive discussion about the trends of the royal family of Buyeo which had presence in the Central Plain after the invasion of Former Yan(前燕) in 346 was conducted, while tracking the location of the royal castle in the late Buyeo period which has been an issue. Buyeo, facing the situation of the temporary collapse due to the sudden invasion of Murong-Xianbei(慕容鮮卑) in 285, was on the road to decline since then. Buyeo was deprived of Jilin City(吉林市), which was the land of the founding, by Goguryeo in the 330s, and moved the royal city to Nongan County(農安縣) in the northwest. The royal castle of late Buyeo, which is confirmed on the record, is estimated to be in Nongan County, Jilin(吉林省) of China. However, shortly after moving to Naongan, Buyeo became completely subordinate to Former Yan after being invaded by Former Yan in 346. However, it has been confirmed in the historical records that the royal family of Buyeo played active role in politics of Former Yan, Former Qin(前秦) and Later Yan(後燕), starting with Yeoul(餘蔚) since then. Through their activities, it is possible to confirm that the Buyeoguk(夫餘國) barely managed to exist under the influence of the Central Plain dynasties at that time. It is also confirmed that Buyeo was restricted again by the influence of Goguryeo from the first half of the 5th century when Later Yan fell, and managed to remain in history until the end of the 5th century. However, in 498, Buyeo failed to overcome the pressure of Wuji(勿吉) advancing southward, and eventually the royal family surrendered to Goguryeo, and the history of Buyeo reached its end.

Ⅰ. 머리말

Ⅱ. 부여의 ‘西徙近燕’과 후기 왕성의 위치

Ⅲ. 4세기 후반 王室 일족의 동향과 王國의 종언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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