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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청대 중기 미가와 인구, 그리고 화폐

건륭연간 미가변동 해외연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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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청대 건륭년간의 물가 상승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 여러 학설들을 정리하였다. 초기 彭信威와 全漢昇는 주로 재정 지출과 인구 증가를 각각 원인으로 상정하였다. 그 뒤에는 내재적인 요인보다는 외부적 요인, 특히 세계경제와의 연동 속에서 은유입을 주요 원인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점차 통용력을 얻게 되었다. 다만 건륭년간을 두 시기로 나누어서 1736~1775년은 인구증가가 화폐증가보다 빠르고 화폐증가가 농업성장보다 빠른 시기여서 경제적으로 불황기였으며, B期인 1776~1795년은 화폐증가가 농업성장보다 빠르고 농업성장이 인구증가보다 빠른 시기로 호황기라고 보았다. 반면 岸本美緖는 이에 대해서 건륭초기 역시 호황기였다는 논지에 기반하여 이에 반박하였다. 黑田明伸을 비롯하여 폰 글란, 彭凱翔 등의 1990년대 이후의 연구들은 상당히 많은 경우, 다시 해외로부터의 은유입을 강조하기 보다는 중국 사회의 내부 질서 문제로 다시 복귀하는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청대 물가 변동의 원인을 단순히 인구증가나 화폐 증가라는 식으로는 물가변동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했다고 말하기 불충분해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복잡성을 낳은 청대 중국사회가 어떠한 시장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까지도 규명해야 할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summarizes several theories about the causes of inflation during the Qinglong Emperor’s reign in the Qing Dynasty. In the early days, Peng xinwei(彭信威) and Han-Sheng Chuan(全漢昇) supposed financial expenditure and population growth were mainly attributed to the causes, respectively. After that, the view of assuming that the inflow of silver as the main cause of the external factors rather than the internal factors, especially in the connection with the global economy gained popularity. However, as the Qinglong year was divided into two periods, the first phase of 1736-1775 was the economic recession because the population growth was faster than currency increase and the currency increase was faster than agricultural growth. The other B period of 1776-1795 was considered as a booming period vice versa. On the other hand, Kishimoto Mio(岸本美緖) refuted the claim based on the argument the early period of the Qinglong year was also a booming period. Most researches since the 1990s, including Kuroda Akinobu(黑田明伸), Richard von Glahn, and Peng kaixiang(彭凱翔), showed the trend of turning to the internal order issue in Chinese society rather than emphasizing the inflow of silver from overseas. At the current time, it is fact that it is not enough to say that the cause of the inflation in the Qing Dynasty indicated simply to population growth and currency increase in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diversity and complexity of economic fluctuation. However, it is required to acknowledge that there are still many factors to be identified as to what kind of market mechanism in the Qing Dynasty, which produced such complexity.

Ⅰ. 머리말

Ⅱ. 청대 미가변동에 관한 초기 연구

Ⅲ. 경기변동에 관한 林滿紅와 岸本美緖의 논쟁

Ⅳ. 陳春聲, 黑田明伸, 彭凱翔, 폰 글란의 연구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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