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중국사』 시리즈는 1978년에 淸末 편이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약 40년이 경과한 2019년 六朝(220∼589) 편이 출간되면서 사실상 완결되었다. 이 중 隋唐 편은 두 번째로 빠른 1979년에 출간되었지만, 오늘날까지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이 적지 않다. 이는 수당사에 대한 당시 구미학계의 높은 관심과 관계가 있는데, 1973년에 출간된 아서 라이트ㆍ데니스 트위체트 편, 『당대사(唐代史)의 조명』(위진수당사학회 역, 아르케, 1999)의 서문에서는 그 이유와 관련하여 “중화제국 수천 년의 역사 가운데 당대는 위대했던 시대 중의 하나이다. …… 이러한 엄청난 활력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는 당 왕조의 절충주의로, 이것이 바로 당이 이전 400년의 혼란스런 역사로부터 다양한 문화의 흐름들을 한데 끌어모은 방식이었다. 둘째는 당의 국제성, 즉 모든 종류의 외국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었다”라고 한다. 한국 고대국가에 대한 구미학계의 인식은 “이러한 외국(즉 고구려, 백제, 일본) 지도자들의 굴복은 순전히 형식적이어서 직위를 받은 인물들조차도 종종 적극적으로 중국의 영향력과 군대들에 반대하였다. …… 한국은 여전히 명목상 중국의 국가체제를 모방한 당나라의 종속국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신라와 발해는 당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영구히 중국 문화권 안에 편입되었다”라고 하는 것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역사적 귀속문제의 핵심을 책립(책봉)으로 보면서 고구려 등이 책립을 받은 것은 실질이 아닌 형식적이고 명목적이라고 한다.
The perception of the Western academia on the status of ancient Korean states(Koguryo, Shilla, Paekche, Balhae) is as follows. “While the submission of these foreign rulers was purely formal and those who received titles would often actively combat Chinese influence and armies, the language and practices of statecraft in East Asia derived from the Chinese model”, … “Korea remained a nominal Tang vassal institutionally modeled on the Chinese state”. That is, Korean state’s reception of titles from Chinese state was not substantial but formal and nominal practice, so this shows that Korea remained independently at that time.
Ⅰ. 머리말
Ⅱ. 수당사 서술 형식과 주요 관심사
Ⅲ. 대외관계의 범주와 한국사 인식
Ⅳ.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