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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제국주의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李種赫의 생애와 활동

굴종, 협력, 저항의 인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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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은 군대해산 이후 명백을 유지했던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가 폐교되자, 제국주의 일본의 정책에 따라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10년 8월 나라가 망했지만 그는 망국노의 신분으로 일본 육사를 무사히 마쳤다. 1915년 소위로 임관한 후 제국주의 일본군의 충실한 군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918년 연해주 지역으로 출병했을 때 자신과 같은 동족이자 항일 투사를 처형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는 1919년 3.1운동을 보면서 독립군 참여의지를 불태웠다. 만주로 망명한 후 그의 무관학교 선배 이청천을 만났으며, 참의부 군사위원장역할을 수행하다가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5년간 수형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이종혁은 제국주의 일본의 회유를 수없이 받았지만 독립운동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감옥에서 나온 이종혁은 몸은 피폐했지만 그의 정신과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은 후대에 그대로 전해졌다. 혼란한 시기 한 개인의 영달과 국가의 안위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켰던 군인 이종혁의 삶이 친일의 길을 걸었던 그의 일본육군사관학교 동기와 선배들의 삶보다 소환해서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When the Korean Empire Military Academy, which had remained clear since the disbandment of the army, was closed, Lee Jong-hyuk entered the Japanese Military Academy in accordance with imperial Japan’s policy and walked the path of a soldier. Although the country collapsed in August 1910, he completed the Japanese military service safely as a ruinous slave. After being commissioned as a lieutenant in 1915, he served as a loyal soldier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 However, when he was dispatched to Russia in 1918, he faced the situation of executing his own fellow countrymen and anti-Japanese fighters. He burned his will to participate in the Independence Army while watching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After defecting to Manchuria, he met Lee Chung-cheon, a senior member of his military school, and was arrested by the Japanese consulate police while serving as the chairman of the military committee of the Ministry of Truth and Reconciliation, and served a five-year prison term. In prison, Lee Jong-hyuk received countless conciliatory gestures from imperial Japan, but kept his pride as an independence activist. Lee Jong-hyuk, who came out of prison, was exhausted, but his spirit and passion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were passed on to future generations. This is why the life of Lee Jong-hyuk, a soldier who kept his national identity in the midst of an individual’s leadership and national security during a chaotic period, should be recalled and remembered rather than the life of his colleagues and colleagues at the Japanese Military Academy, who walked the path of pro-Japanese relations.

Ⅰ. 머리말

Ⅱ. 가계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시절

Ⅲ. 일본 육군사관학교 입교와 독립군 ‘토벌’

Ⅳ. 만주 망명과 참의부 활동

Ⅴ. 체포와 순국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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