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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노르베르트 베버가 본 한국의 그리스도교

한국 그리스도교의 바탕을 중심으로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는 20세기 초 교육활동을 주목적으로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한 독일의 수도원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의 초대 수석 아빠스[총원장]이다. 베버 총원장이 당시 한국의 경향 각지를 두루 여행하면서 남긴, 종교와 신앙, 문화와 예술에 대한 치밀하고도 방대한 자료들에 대한 학술적인 심층 연구는 가톨릭교회 내의 중요성뿐 아니라, 한국에 관심을 둔 국내외 인문학 연구 전반 등 다방면에 걸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노르베르트 베버 총원장의 한국 방문과 관련된 저술과 영상 자료 등에 나타나는 1910년대와 1920년대 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접근이다. 베버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은 가톨릭이 뿌리를 내리기 위한 바탕이 잘 마련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인 내면의 겸손과 절제, 둘째 가족 중시 문화, 셋째 ‘품앗이’로 대표되는 노동공동체의 활성화, 그리고 순교자를 배출한 거룩한 전통인 것이다. 그 당시 한국의 문화와 종교, 예술, 한국 사람과 역사에 대하여 따뜻한 눈길로 애정을 보였던 유럽인 수도원장의 모습을 오늘에 되살려내 재조명함으로써, ‘다종교 다문화’라는 특징을 지니는 오늘의 한국 사회와 전 세계에서 종교간 대화와 협력이라는 현대 종교인의 사명에 귀감이 된다고 하겠다. 사실상, 베버는 한국 연구를 유럽에서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다. 그의 여행기, 스케치, 영화, 유물 수집, 상트 오틸리엔 선교박물관 설립 등으로 베버는 최초의 한국학자로 불러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또한 베버가 보여준 오늘날 ‘새로운 복음화’ 개념에 대한 선구적 각성이라든가, 현대 선교학의 정립에 기여하여 독일의 대학교에 선교학 강좌를 최초로 개설하는데 영향을 끼친 점도 새로운 조명과 더 깊은 연구가 요청되는 부분이다.

Norbert Weber was the arch-abbot of the Benedictine Abbey of St. Ottilien, Germany. He sent missionaries to Korea for the main purpose of education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rchi-abbot Weber left numerous materials about religion and belief, culture and arts of Korea at that time. These vast and valuable materials are very important not only for the academic use of the inner circle of catholic church, but also have immeasurable value for the whole field of humanistic research on Korea. This study is an approach to the christianity in Korean in the age of the 1910’s and 1920’s, concerning with the visit of Norbert Weber. According to his written works and visual materials, Korea has got well prepared disposition for Catholicism. There are four elements for the disposition: firstly, modesty and moderation in the mind of Korean people; secondly, a serious view of family; thirdly, vitalized labour community pumashi; fourthly, martyr’s tradition. In this article, I try to re-illuminate the warm-hearted attitude of the European arch-abbot on Korean culture, arts, people and history. Such kind of attitude becomes a shining example in multi-religious and-cultural society for the mission of modern religious people in the context of inter-religious dialogue and cooperation in Korean and all over the world. As a matter of fact, Weber was the ringleader of Korean studies in Europe. His book of trip in Korea, his outstanding sketches, film making, relic collection, and founding of missionary museum in St. Ottilien make himself as the first scholar of Korean studies in Europe in the strict sense of the concept. Additionally, it is required for a deeper and wider research about his influence on the renewed awakening in the idea of ‘new evangelization’ and/or on his pioneering contribution to treat missiology and religious studies as regular subjects at German universities.

Ⅰ. 서론

Ⅱ. 베버가 본 한국 그리스도교의 바탕

Ⅲ.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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