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자장의 진신사리 봉안 사실과 고려 및 조선 시대 진신사리의 이전 봉안, 그리고 임진왜란 무렵 통도사 진신사리의 분장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 연구이다. 자장은 귀국 후 통도사를 비롯하여 진신사리를 전국의 곳곳에 봉안하였다고 하는데, 그동안 제기문에 나타난 자장의 진신사리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다루어진 바 없는 듯하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문헌 기록에 나타난 자장의 진신사리 봉안 사찰은 16소에 이르고 있다. 5대 적멸보궁 또는 이를 포함한 8대 적멸보궁 외에도 『삼국유사』에 자장이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경주 황룡사와 울산 태화사, 조선중기 이후의 기문에 보이는 천안 광덕사 등의 사찰들에도 자장이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자장의 진신사리 봉안은 한국에서의 진신사리 봉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듯하며, 흥법에 매우 큰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자장의 진신사리 봉안 사실과 통도사 진신사리의 분장 및 이전 봉안 사실이 뒤섞여 이해되고 있다. 자장의 진신사리 봉안은 자장 당대뿐만 아니라, 조선중기 이후의 기문에서 보이는 경우도 적잖기 때문에 사료 비판을 통한 이해가 필요하다. 본고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제 기문에 나타나는 자장의 진신사리 봉안과 자장이 봉안한 통도사의 진신사리가 고려와 조선초에도 분장되거나 이전 봉안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고려말 임란시 통도사의 사리가 분장된 것은 홍건적이나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한 불교수호의 차원이었다. 자장이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사실은 자장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 자장의 흥법을 계승 및 추념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attempted to examine the fact that monk Jajang's Jinsinsari(Sakyamuni's Buddhist ashes) was enshrined in the literature records, the previous enshrinement of monk Jajang's Jinsinsari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and the makeup of Tongdosa Temple's Jinsinsari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t is said that monk Jajang enshrined Jinsinsari all over the country, including Tongdosa Temple after returning to Korea, but it seems that monk Jajang Jinsinsari, which appeared in my article, has not been comprehensively dealt with. According to my research, there are 16 temples in Jinsin-sa Temple in monk Jajang in the literature records. In addition to the five Jeokmyeolbogung Palace or the eight Jeokmyeolbogung Palace, it is recorded that monk Jajang enshrined Jinsinsari in the Samgukyusa, Gyeongju Hwangnyongsa Temple, Ulsan Taehwasa Temple, and Cheonan Gwangdeoksa Temple, which is seen in the post-Joseon Dynasty. enshrinement of Monk Jajang's Jinsinsari seems to occupy most of the Jinsinsari, and I think it has contributed very much to the expansion of Buddhism. Until now, it has been understood that monk Jajang's Jinsinsari enshrinement, Tongdosa Temple's costume, and previous enshrinement are mixed. Since monk Jajangsa Temple is often seen not only in monk Jajang but also in articles after the mid-Joseon Dynasty, critical understanding of historical records is needed. What is particularly noteworthy in this paper is that the Jinsinsari of Tongdosa Temple, which was enshrined by Jajang in the Goryeo and early Joseon Dynasty, was cremated or previously enshrined. In this way, the sari of Tongdosa Temple was dressed up as a Buddhist protection to prevent the invasion of orancae in the north-south. It should be understood that the truth of Jinsinsari enshrined by monk Jajang was inherited and honored not only in monk Jajang period but also in the later generations.
Ⅰ. 들어가는 말
Ⅱ. 자장의 진신사리 봉안
Ⅲ. 통도사의 진신사리 분장
Ⅳ. 나가는 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