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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5세기 강진 무위사의 국가적 위상

The Administrative Status of Muwisa in Gangjin in the 15th Century

DOI : 10.22912/dgsh.2022..7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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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15세기 승정체제 개혁과 운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15세기 무위사의 국가적 위상, 국가와 사찰의 상호관계에 대해 논해 보았다. 그 논의의 과정에서 1406년과 1424년 승정체제 개혁, 자복사, 수륙사 등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일부 수정·보완하기도 하였다. 주요 논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위사는 고려초기 이래로 승정체제에 소속된 ‘지정 사찰’이라는 국가적 위상을 대체로 유지해 왔으나, 1406년과 1424년의 승정체제 개혁으로 인해 ‘일반 사찰’이 되었다. 이에 무위사는 주지 임명, 사사전 지급 등을 통해 국가가 지원하고 관리하던 사찰에서, 국가의 지원과 관리를 받지 않는 사찰이 되었다. 그 자체적인 경제 기반의 유무나 확보에 따라 유지될 수도, 퇴락할 수도, 망폐할 수도 있는 일반 사찰이 된 것이다. 둘째, 무위사는 1406년 승정체제 개혁에 대한 1407년의 후속 조치에 따라 읍외의 ‘명산대찰’로서 읍내의 ‘자복사’를 대체하게 되었는데, 이 조치는 1412년 철회되었다. 1406년의 승정체제 개혁은 지방 군읍의 위계를 따른 승정체제의 대대적인 개편이 다소 무리하게 시도됨으로 인해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에 ‘읍내 자복사’의 혁거 여부가 계속 논란이 되었다. 1406년 개혁의 이러한 실패가 사실상 1424년 개혁의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1424년의 승정체제 개혁은 주요 ‘명산대찰’에 사사전을 분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셋째, 15세기에 ‘수륙사’는 국가나 왕실이 조종, 곧 선왕・선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정한 사찰이었다. 15세기 후반에 국가나 왕실의 수륙사 지정은 증가하였고, ‘국행 수륙사’와 ‘내행 수륙사’의 구분이 모호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무위사는 1476년경의 중창을 계기로 수륙사로 지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창도 국가나 왕실의 일정한 지원 하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처럼 15세기 후반 무위사의 수륙사 지정은, 승정체제 운용의 지속 하에 국가나 왕실의 수륙사 지정이 증가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15세기 개별 사찰의 연구는 승정체제, 자복사, 수륙사 등의 국가 제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15세기 승정체체의 연구는 개별 사찰의 구체적인 사례 검토를 통해 보완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the Seungjeong system, this paper examined the administrative status of Muwisa Temple in the 15th century. The main content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Muwisa Temple has been a temple belonging to the Seungjeong system since the early Goryeo Dynasty, but it became a general temple due to the reform of the Seungjeong system in 1406 and 1424. Second, the reform of the Seungjeong system in 1406 was not successful due to excessive attempts. This failure of the 1406 reform seems to have been the background of the 1424 reform. Third, in the 15th century, Suryuksa was a temple designated by the state or the royal family to pray for the repose of the ancestors. In the late 15th century, Muwisa Temple’s designation as Suryuksa was made at a time when the designation of Suryuksa by the state or the royal family increased. Therefore, research on individual temples in the 15th century needs to be conducted based on an understanding of the state system, and research on Seungjeong system in the 15th century needs to be supplemented through specific research on individual temples.

Ⅰ. 머리말

Ⅱ. 15세기 초반 승정체제 소속 사찰의 지정과 해제

Ⅲ. 15세기 중 · 후반 승정체제의 지속과 ‘수륙사’ 지정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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