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후기 야담에 펼쳐진 ‘약국’이라는 공간을 살피고, 이것이 당대의 실제와 어떻게 연관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 논문은 당대 새로운 삶의 방식이 수렴된 공간의 현장성과 장소성을 살피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간 야담의 공간 연구는 주로 지역성과 연관되어 주목되었으며, 현장성은 ‘사대부 가문의 이야기판’에만 주목되어 온 경향이 있다. 왕실-사대부로 이어지는 상층계급의 약재사용은 17세기 이후 인구증가, 약재 값 상승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거쳐 수요-공급의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이에 약국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사회적 변화로 부상하면서 약의 네트워크는 의료의 대중화를 표방하기에 이른다. 특히 서울의 구리개라는 곳이 주요한 시장을 형성하면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대민구료의 상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야담에도 이 곳 구리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다수 등장한다. 이 이야기들에서 약국은 서사적 양상에 따라 ① 만남과 재현의 공간, ② 세태와 활용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곧 ①의 경우 당대의 일상적 만남의 공간이자 이야기판이 벌어지는 1차적 구연의 공간이 야담에 포착된 것으로 보인다. ②의 경우 약국을 둘러싼 치부라는 욕망과 이를 통어하려는 은혜라는 코드가 야담의 이야기와 결합한 것이다. 이때 조선후기 한 문단편의 주요 유형인 치부담이나 보은담과 결합하면서 비교적 강렬한 주제의식을 내재하게 된다. 이를 2차적 활용이라 할 만 하다. 약국은 우리가 그간 주목하지 못했거나, 단순히 시정문화의 일면으로 다루었던 여러 공간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약국을 둘러싼 현실 맥락과, 야담 속 재현된 약국의 여러 모습을 통해, 이 공간을 다성적 목소리가 발화되었던 조선후기 시정 이야기판의 주요한 한 축으로 상정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야담에 나타난 여러 약국의 모습은, 당대 구연의 현장이 지면을 통해 수용되고 활용된 흔적에 다름 아닌 것이다.
1. 서론
2. 민간의료의 성장과 구리개 약국
3. 야담에 그려진 약국의 모습
3.1. 만남과 재현의 공간
3.2. 세태와 활용의 공간
4. 소결 : 다성적 이야기판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