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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간쟁(諫諍)의 교육적 함의: 교육학적 관점에서 본 간쟁

본 논문은 유학에서 중시한 간쟁의 이론적 배경과 그 제도화 과정에 대한 탐색을 통해 그 안에 내재된 교육적 함의를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유학은 그 비조(鼻祖)인 공자 때부터 간쟁에 관해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것은 ‘종주(從周)’ 정신으로 대표되는 윤리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간쟁은 곧 ‘인(仁)’의 구현으로 인간의 도덕 감정에 기반하고 관계 간의 가치 등가를 신뢰할만한 방식으로 실천하는 윤리적 행동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순자의 저서인 「순자」와 한대 저술인 「효경」에 일관되게 반영되었으며, 유학을 채택한 모든 왕조에서 이는 대신과 자식의 도덕적 의무로서 지속적으로 요구되었다. 다만 이런 유학의 정신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적어도 10세기 이후를 기다려야 했는데, 바로 언관(言官)과 언로(言路)에 대한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경우 이 제도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고려 왕조부터였다. 고려는 토착화된 제도와 문하부 안에 간관을 두는 두 가지 방식이 공존하는 동시에 예종 이후 경연 제도를 활성화하면서 국왕의 제도화된 교육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행하였다. 특히 고려의 경연은 국왕의 주도 하에 주임(主任)을 맡은 기구 외에 다양하게 추천을 받은 인사들이 경연관의 역할을 맡아 진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언관의 직제 외 간쟁이 교육 활동에 포섭되는 방식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여말 공민왕 때 고려의 경연은 합좌(合坐)의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이것은 교육과 간쟁을 통해 국왕을 보좌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전기부터 시행된 방식을 참고하여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런 제도화된 국왕 교육 과정은 위화도회군 이후 여말 정주성리학적 교양을 갖춘 신진사대부에 의해 정비되어 새 왕조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조선 건국 후 경연은 정주성리학자들이 강조한 국왕의 이상적인 모습인 군사(君師)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왜냐하면 경연은 ‘진덕수업(進德修業)’, 또는 ‘훈도(薰陶)’로 표현된 교육 활동이 이 제도 운영의 중심이며, 여기서 경연관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제도의 전형성이 보인 시기는 경연 기구인 집현전이 등장한 때로, 이후 집현전 운영 과정에서 얻은 많은 경험이 성종의 홍문관으로 이어져 교육과 간쟁의 동질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조선 중기 이후의 공론 정치(公論 政治)와 붕당(朋黨)의 출현이다. 정리하자면 여말 정주성리학의 도입은 언로의 제도화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만큼 교육과 간쟁의 동질성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충분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This article aim to define an educational implication inherent in an expostulation on King by investigation about the theoretical and historical basis of it. As we know, Confucian school prepare the theoretical ground about scholarly official’s expostulation on King and it derive from sense of ethics that is represented the admiration on the culture of Chu(周) Dynasty. According to this, expostulation mean the embodiment of benevolence(仁) and the performance, standing on the basis of ethical emotion and practising the equivalent exchange on ethical value in relationship. Since then this is mentioned ‘Xunzi(荀子)’, Xunhwang(荀況)’s book, and ‘The Scripture on Filial Duty(孝經)’, a writing in Han(漢) Dynasty and this is required as a ethical duty on officials and sons consistently in all Dynasty adopting Confucianism. However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is idea is generally achieved a way guaranteeing the independence of advisory officials’(言官)s duty and advisory route(言路) after 10 Century. The historical record about institutionalization on scholarly officials’ expostulation is appeared since Korye(高麗) Dynasty. Certainly there are advisory officials under the office of senior ministers(門下省) and invigorating a royal education system(經筵) for King since King Yejong(睿宗) in Korye Dynasty. Especially a royal education system in Korye Dynasty is composed by scholarly officials belong to many departments such as royal literary organization(寶文閣) under King’s control until the last period of Dynasty. This means containing expostulation as an educational work. An expostulational system is established the ideal way to realize the scholarly King(君師) as an ideal type of king for confucian scholars after Chosŏn(朝鮮) Dynasty. This system aim to bring up King’s virtue(薰陶) and guarantee to advise his opinions freely in the face of King. On this account, royal literary organizations(集賢殿, 藝文館, 그리고 弘文館) in Chosŏn Dynasty are also developed as a consultative one. Therefore it generate the opportunity of the appearance of public politics(公論政治) and factions(朋黨). It is because of a Neo-confucian school who provide the theory to appear the isomorphism between education and expostulation.

Ⅰ. 서론

Ⅱ. 간쟁의 이론적 배경에 관한 고찰

Ⅲ. 간쟁의 제도적 정비에 나타난 교육적 함의

Ⅳ. 요약 및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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