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국의 사천지방에서 활약하였던 신라 淨衆無相(684~762)에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무상 선사가 초기 선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문제, 티벳불교에 미친 영향력, 그리고 무상의 선사상 등을 다룬 연구논문들이 한·중·일 삼국의 불교학자들에 의해서 나오고 있다. 이렇게 정중무상에 관한 연구들의 전반적인 경향을 검토해 볼 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정주무상과 대성자사(大聖慈寺)의 창건에 대한 배경 설명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 중국 쓰촨성 청두시 대성자사는 안사의 난 때 당현종(唐玄宗, 685-762, 재위 712-756)의 지원으로 건설된 후 점차 서남(西南) 제일의 사찰로 발전하였다. 정중무상은 신라 왕족으로, 당현종이 피난할 때 대자사의 건립 과정에서 규제(規制)를 세우라는 명을 받아 발기부터 입제(立制)까지 무상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무상은 당나라 선종 전승에서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었지만, 대성자사와 맺은 관계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 불교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중국학자들의 연구를 참고하면 무상의 입당과 수행에 대해서 재검토하고, 불교에 대한 당현종의 태도와 연계하여 이것이 무상에게 대성자사의 규제를 맡긴 원인임을 밝혔다.
This study related to Jeongjung Musang, which was active in China’s Sichuan Province, has been actively conducted. Research papers dealing with the issue of the proportion of free prehistory in the early Seonjongsa Temple, the influence on Tibetan Buddhism, and the free prehistory are being published by Buddhist scholars from the three countries of Korea, China, and Japan. When reviewing the overall trend of studies on Jeongjung Musang in this way, one regret is found. It is that the background explanation of Jeongjung Musang and the foundation of Daeseongjasa Temple is omitted. Now Daeseongjasa Temple in Chengdu, Sichuan Province, China, was built with the support of Tang Hyeon-jong during the Ansa War and gradually developed into the best temple in the southwest region. It is Jeongjung Musang, the Buddhist monk of Silla, who was ordered to build this temple. Jeongjung Musang was mentioned as an important figure in the transmission of the Tang Dynasty’s Seon Buddhism, but the relationship I had with Daesungjasa has not been sufficiently illuminated until now. Therefore, in this paper, through Chinese Buddhist literature, we reviewed the form of gantong of Jeongjung Musang and revealed that this was the reason why we entrusted Jeongjung Musang to build Daeseongjasa Temple in connection with Tang Xuanzong’s attitude toward Buddhism.
Ⅰ. 머리말
Ⅱ. 大聖慈寺의 창건과 淨衆無相
Ⅲ. 정중무상과 당현종
Ⅳ.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