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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우수등재 학술저널

백제의 서남해안지역 장악과정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 고흥지역 고분 변천을 중심으로 -

이 글은 삼국시대 서남해안 지역 고고자료의 변화상을 구체화해서 백제의 지배전략과 그 과정에서 확인되는 역사사건의 실제 존재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고흥반도 내에서 고분의 변천 특징을 밝히고 토착과 외래 물질문화의 단절과 연속 여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고흥지역 고고자료의 변천 획기는 4세기 4/4~5세기 1/4분기임을 확인했다. 이 시기에 남부지역에는 외래문화의 유입양상이 두드러지는 반면, 북부지역에는 토착문화가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5세기 2/4분기 이후에는 북부의 토착문화는 쇠락하지만 남부의 외래문화는 지속 성장한다. 이처럼 5세기 전반에 고흥 남부지역에 외래문화가 토착문화를 대체하는 상황으로 볼 때 넓은 의미에서 ‘침미다례 도륙’기사는 실재했고 그 여파가 고흥지역에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지배전략으로서 백제는 고흥지역을 교통로상의 주요 거점 확보와 관련하여 최우선으로 장악해야 할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구분했고, 최우선지역에 백제에 예속된 왜인을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해양 교통로에서 일정한 거리가 있는 북부지역은 일시적인 자율성이 확보되었던 것 같다. 이후 백제·왜와의 교섭이 고흥 남부지역으로 집중됨에 따라 교통로와 교역망도 기존 북부에서 남부지역으로 재편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북부의 토착세력은 점차 도태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남부의 왜계고분은 더 이상 조영되지 않는데, 왜인의 현지화 혹은 백제가 지원하는 신흥토착세력의 성장이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이후 웅진기 후반의 고흥지역은 섬진강을 경계로 한 최전방의 2차 방어지역으로서 백제 산성이 조영되면서 완전한 백제의 지방으로 편제된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clarify the changes in archaeological data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the southwest coast to understand Baekje's dominant strategy and the actual existence of historical events identified in the process. To this e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cient tombs were revealed within the Goheung Peninsula, and the disconnection and continuity of indigenous and foreign material cultures were carefully examined. As a result of the analysis, it was confirmed that the transition period of archaeological data in the Goheung area was in the fourth quarter of 4C to the first quarter of 5C. During this period, the inflow of foreign forces was remarkable in the southern region, while indigenous forces were growing in the northern region. However, after the second quarter of 5C, indigenous forces in the north will disappear, but foreign forces in the south will continue to grow. In the first half of the 5th century, considering that foreign cultures replaced indigenous cultures in the southern part of Goheung, it was highly likely that the Historical records of 'the slaughter in the Chimmi Darye region' were real. As a dominant strategy, Baekje distinguished areas that should be controlled first and areas that were not in relation to securing major bases on the transportation route, and it seems that Baekje dispatched Japanese subordinated to Baekje to the top priority area. As a result, it seems that temporary autonomy has been secured in the northern region, which is a certain distance from the marine transportation route. Since then, as negotiations with Baekje and Japan have been concentrated in the southern part of Goheung, transportation routes and trade networks are estimated to be reorganized from the existing northern part to the southern part. In this process, it is judged that indigenous forces in the north are gradually eliminated. On the other hand, the Japanese tombs in the south are no longer contrasted, which is believed to be due to the localization of Japanese people or the growth of emerging indigenous forces supported by Baekje. Since then, the Goheung area in the late Woongjin period is the front-line secondary defense area bordering the Seomjin River, and is organized into the complete region of Baekje as Baekje Fortress is contrasted.

Ⅰ. 머리말

Ⅱ. 고흥지역 고고자료의 현황

Ⅲ. 고흥지역 고분의 변천

Ⅳ. 고흥지역 고분의 지역별 변천 특징과 의미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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